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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힙합 1세대 뮤지션이자 천재 프로듀서, 듀스로 활동했던 추억의 이현도 과거 행적 및 작품활동 근황 그리고 대한민국 음악사에 남긴 흔적들을 알아보도록 한다.
최종학력과 과거의 행적
안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예대에 지원을 했으나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악기로 실기고사 때 연주할 수 없어서 떨어지고 그 이후로 고졸로 남게 되었다. 음악인, 연예인으로서의 이현도의 등장은 1990년으로 '현진영과 와와 1기'로 활동했던 클론의 구준엽과 강원래의 군입영하게 되자 현진영은 친하게 지내던 이현도, 김성재를 이수만에게 소개하여 현진영과 함께 '현진영과 와와 2기'로 활동이 처음 시작된다. 활동 중 현진영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여 댄서 활동이 중단되면서 현진영에 대한 분노와 갑작스러운 활동정지로 인한 좌절로 고통스러워하다가 댄서활동을 끝날 수 없다고 마음을 먹게 되면서 음악을 만들고 싶은 열망과 창작욕구가 불타 올라 신시사이저를 구입하면서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 후 김성재를 대학진학을 목표로 공부를 시작했고 이현도는 나이트클럽에 출입을 하면서 춤을 추게 되는데 춤을 추면서 울분을 풀고 있을 때 친한 지인이 안타까워하며 오디션을 권유했다. 그래서 가수로 데뷔하기로 마음먹고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앨범을 완성해서 듀스를 결성했고, 1993년 데뷔 앨범인 'DEUX'를 발표했다. 타이틀곡 '나를 돌아봐' 앨범을 발표 한지 한 달이 지나도 방송국에서 불러주지 않아 방송 활동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때 듀스의 곡을 높게 산 SBS의 가요프로그램에서 출연하면서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데 되었고 이후 듀스는 대한민국 힙합계의 매운 큰 족적을 남기게 된다. 이후 1995년에 소속사의 입김에서 벗어나 더 듀스 다운 활동을 하자는 취지에서 돌연 해체 선언을 하고, 김성재를 솔로로 내세운 뒤 자신은 뒤에서 음악적인 지원을 하는 식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돌연 미제로 남은 김성재 사망 사건 이후 자신이 친구를 잃은 아픔을 딛고 새로이 활동을 시작하기로 하면서 1996년부터 D.O로서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에는 듀스와 흑인 음악을 넘어 새로운 시도를 하여 그만의 개성이 담긴 음악을 만들었다. 듀스 해체 후 솔로 앨범 사자후, 친구에게, 미래, 피에로 등의 대표 곡들로 활동하였으며 2000년까지 총 3장의 앨범을 내기에 이른다.
천재의 작품활동과 근황
현재 D.O엔터테인먼트 대표이며 지누션의 말해줘, 유승준의 열정, 구본승 너 하나만을 위해, 룰라 3! 4! 등 곡들이 대박이 났고 애프터 스쿨 가희, 손담비와 함께 미국에서 활동했던 그룸 S-blush 프로듀싱 경력이 있다. 2008년엔 영화 쿵후 판다의 삽입곡 Kung Fu Fighting의 리메이크를 담당했고, 이 과정에서 비의 음악 지도를 하기도 했다. 예능프로그램은 캐치 뮤직 이프 유 캔, 언프리티 랩스타, 슈퍼매치, 쇼미 더머니 2이며 수상내역은 엠넷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공로상이 있다. 그리고 2020년 9월 다이어트를 해서 몸무게 20kg를 감량했다고 한다. 무릎이 안 좋아지고 운동도 안 하니 살이 많이 쪄서 저탄수 고지방 다이어트를 했다고 한다. 그럼 앞으로도 신곡 활동, 화보, 광고 모델, 콘서트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기대해 보겠다.
대한민국 음악사에 남긴 흔적
90년대 가요를 기억하는 대중들에게는 '랩'하면 듀스보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먼저 떠오를 테지만 처음부터 흑인음악에 몰두한 이현도와는 달리 서태지는 학창 시절부터 메탈헤드를 추구하였고 두 사람은 음악적 색깔이 전혀 달랐다. 흑인음악에 애정을 가지고 더 깊게 파고들고 그가 뿌려놓은 음악적 성취들이 후배들에게 적지 않은 유산이 되었고 특히 2000년대 들어 힙합이 대세가 되면서 평가가 점점 올라가게 되었다. 랩분야의 공적도 무시할 수 없는데 당시 대중들에게 정말 랩답게 즉 플로우를 살리면서 적절하게 라임을 배치하는 등 우리가 생각하는 기준에 걸맞은 랩을 선보였다. 이에 따라 정통 랩의 라임을 살려내어 한국 문학계에서 한시 이후 맥이 끊겼던 운자를 부활시켰다. 정리를 하자면 힙합은 물론 훵크, 뉴 잭 스윙 등 흑인음악의 문법을 우리 대중음악에 맞게 이식, 대중화한 큰 공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