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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준

대한민국의 가수 겸 작곡가, 작사가 이자 대학교수이다. 연기, 광고모델, 의상패션까지 만능으로 여러 방면 활동 중인 우리의 영원한 오빠 가수 김원준 대해  데뷔부터 가수에서 연기자까지 좌절과 제기를 알아본다.

데뷔 및 가수에서 연기자까지 전성기

1973년 2월 16일 서울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명문대 출신 의사인 아버지로부터 엄격하게 자랐으나 학창 시절 음악을 너무 좋아해 고등학교 시절부터 4인조 아마추어 밴드 '주크박스'를 결성해 활동했다. 그는 아버지의 반대에 불구하고 서울예대에 진학, 재학 중에 통기타 클럽인 '예음회'에서 활동하며 음악에 대해  더욱 심취했다. 1992년 해당 밴드 선배의 오디션 추천으로 제일 기획에서 개최한 가수 오디션을 통해 300: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당시 참신한 신인 가수를 발굴하여 CF와 음악을 동시에 선보이며 유행을 만들어 가고자 했던 파격적인 광고 전략이 수립되어, CF전속모델을 겸하는 신인 가수 발굴 과정에 김원준이 뽑혔다. 그때 오디션에서 불렀던 건 자작곡 '모든 잠든 후에'였다. 데뷔 앨범 타이틀곡 '모두 잠든 후에'는 가요차트 17회 1위를 차지하면서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리며 성곡적인 데뷔를 맞이하게 된다. 그 이후 2집 타이틀곡 댄스리듬과 록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자작곡 '언제나', 3집 타이틀곡 하우스 리듬과 허리춤, 치마패션으로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너 없는 동안' , 후속곡 '짧은 다짐'으로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 골든컵을 영광을 안았다. 그 외 4집 넌 내 거, 5집 Show,6집 얄개시대 등 많은 앨범들을 발표했다. 수상내역은 1993년 총 17회, 1994년 총 14회, 1995년 총 7회, 1996년 총 5회가 있을 정도로 큰 영광을 얻었다.  조각 같은 외모 덕분에 데뷔와 동시에 영화와 드라마 제의가 쏟아졌고 가수 활동 전념을 고집하였나 1995년 공군사관학교 생도의 생활을 그린 창공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활약했고 이후 드라마 RNA, 이브의 화원, 별에선 온 그대, 넝쿨째 굴러온 당신, 폭풍의 여인, 꽃가족 등 영화 불의 태양, 네온 속으로 노을 지다, 유아독존등  꽃미남답게 연기분야에서도 맹활약을 했다.

 

김원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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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과 제기의 성공

그 이후로 그는 싱어송라이터로 아티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대중성 있는 음악과는 달리 과감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음악성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앨범 프로듀싱을 하는 바람에 대중성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으며 그 이후 새로운 앨범들은 전성기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하고 최고 톱스타 자리 또한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성기는 차츰 저물기 시작했다. 7집 활동 시 경비행기를 타고 이동 중 갑작스레 비행기가 추락하게 되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는데 사고 당시  기절하여 응급진료 후 서울로 후송, 서울 영동 세브란스에 입원했으며 정밀검사 후 다리와 팔 목 등의  장 파열, 골절상 등이 발견되어 한동안 입원하게 되었다. 1999년 병역 이야기까지  오르내리게 되면서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었고 마음고생까지 예기치  않았던 수난도 겪었다. 다행히 공개 재검을 통해 재발성 어깨탈구 증상이 재확인되었고 타당함이 증명됨으로써 동일사유로 면제 판정을 받으며 의혹에서 벗어났다. 전성기 때 벌어 놓은 전재산을 모두 털어 지은 녹음실 '디어넷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음반 제작까지 직접 참여하게 되었고 결국 정규 9집 발매 후에는 생활고에 빠지며 적금과 부동산, 모델별 자동차들을 정리해 가면서 전재산은 밑바닥을 드러냈다. 그는 스스로 재기하고자 2002년 전국 행사를 뛰어다녔고 전성기 때 거들떠보지 않았던 예능, 교양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어느 정도는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동갑내기 친구들 배기성, 이세준, 최재훈과 프로젝트 그룹 M4 결성하여 음악성으로 제2 전성기를 맞이했다. 현재는 강동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14살 연하 검사인 아내와 결혼하여 이쁜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동안왕자와 신지의 만남 그리고 여담들

코요테와의 인연이 상당한데, 보컬 신지가 김원준 팬클럽의 인천지부 회장이었다고 한다. 신지가 불후의 명곡 김원준 편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공식 인증한 바 있다. 유리상자의 이세준과 캔의 배기성 말로는 '원준이는 왕자 기질이 있어서, 방송에 부르려면 PD가 삼고초려를 해야 마지못한 척 나온다'라고 말했다. 옆에서 함께  듣고 있던 박승화는 '그런 애들은 좀 맞아야 정신 차린다'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한때 박용하, 박효신과 셋이 만나면 술은 안 마시고 커피만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던 시절이 있다고 한 적이 있다. 팬클럽 시절부터 서로 익히 아는 사이인지 김원준은 신지의 본명인 지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 50대 들어선 나이임에도 대표적인 동안 캐릭터 꽃미남 소유자이다. 한 방송에서 절친 배기성이 그에게 동안 비결에 대해 묻자, "하루 세기 다 챙겨 먹고 규칙적인 생활 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했다. 여담이 많다는 건 그만큼 우리 마음속에 영원한 왕자오빠, 원조 꽃미남 오빠로 남아 있기에 소문이 도는 거 같다. 멋진 많은 활동영역을 넓혀 왕성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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